![]() 글을 시작하면서부터 벌써 몇 가지 고민들이 머릿속을 메운다. 여성주의적 글쓰기는 무엇인가? ‘남성’의 여성주의적 글쓰기는 가능한가? 아니 그보다 먼저, 남성 페미니스트는 가능한가? 아니...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그것이 고민스럽다면, 지금 나는 왜 이 글을 쓰고 있는 건가? 다시 원점이다. 이러한 고민을 한다는 것이 페미니즘을 정체성의 정치로 게토화시킬 수 있으며, 여성주의를 여/남이라는 생물학적(물론 동의하진 않는다만) 또는 정치적 정체성에 의한 운동으로 규정지어버리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되뇌어보지만 ‘나는 페미니스트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동시에 떠오르는 질문들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고민은 내가 서있는 위치, 내가 사고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 다시 한번 주의하며 되돌아보는 것이다. 혹시 나도 모르게 나의 언어와 행위들이 만들어 낼지 도 모르는 폭력성과 일방성에 대해 내 스스로의 책임을 지우기 위한 내 위태위태한 밧줄 위의 노력이라고 믿고 싶다. 02. 거리에 서다 그 날 이후 나는 주먹을 말아 쥐고, 투쟁구호를 외치는 법을 배웠다. ‘폭력경찰’의 폭력에 분노하는 법을 배웠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즐거움을 배웠다. 그 이후 나에게 있어 연방 ‘조국’통일과 ‘어머니조국’에 대한 생각이 내 고민의 대부분이었다. 의문이 생겨도 그러한 의문은 결국 해결해야만 하는, 교정되어져야만 하는 문제일 뿐이다. 그 운동의 방식에 오류는 있을지언정, 이남사회에 있어 ‘주요모순’은 미국의 식민지배라는 것은 나에게, 우리에게 있어 지고지순한 선으로 존재했다. 나는 민족해방보다는 노동해방에 치중했으되, 그것은 내가 속한 공간에서는 ‘개량’이라는 얘기를 들을 것이 다분했으므로(실제로 들었고), 거기에 대해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죽어라 ‘조국통일 만세’를 외치는 편이 몸과 귀가 편했다. ‘우리의 착한 누이’ 윤금이씨의 주검사진은 우리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고, 여성주의자들의 윤금이씨 사진 게시 반대는 배부른 투정 따위로 보였다. 그리고 서울대 농활대 철수에 대해 민중성 부족이라고 바라보는 후배들을 본다. 03. 우리는 가족? 우리 동아리는 구성원들끼리 가족이나 식구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어느 날 “대표님 의자에는 다른 사람이 앉으면 안되”라고 선배들이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줄곧 그 자리는 대표의 자리였다. ‘조국통일을 열어가는’ 대표에게 그 자리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내가 3학년이 되어 대표가 되자, 내 동기들과 2학년들이 1학년 후배들에게 전했다. “대표님 의자에는 다른 사람이 앉으면 안되” 3학년 내내 그 자리는 나만의 자리였고, 나는 항상 비어있는 그 자리에 앉는다. 우리는 여전히 식구이므로 문제될 것은 없다. 04. 그녀를 만나다 조선일보가 왜 나쁜지 모르겠다는 1학년 후배를 만났다. 귀엽고, 예쁘고, 개념없는[;] 그녀에게 조선일보의 나쁜 점을 밤을 새가며 조근조근 설명해주었다. 물론 너그러운 오빠의 모습으로.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우리의 관계는 딱 그런 모습이었다. '좋은 남자 선배'와 '아무것도 모르는 착한 여자 후배'. 05. 다른, 그녀를 만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들리지 않느냐고, 이제는 내게 되묻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껏 경험했으되, 경험하지 않았던 경험을 기억해내기 시작한다. 여성의 경험과 그 여성의 경험과 함께 존재했던 내 삶의 수많은 경험들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왜 지금까지 보지 못했냐고, 언제나 네 곁에 있었다고, 너는 단지 외면할 수 있었고, 그것이 편했을 뿐이라고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상처와 폭력, 아픔과 눈물은 저 먼 곳의 전쟁터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일상이 또 다른 이들에게는 전쟁이며 내 눈을 가리고 있던 남성/이성애자/비장애인의 망막은 그것을 왜곡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금씩 몸이 느낄 때 쯤 내게 그 잔인한 세상은 너무나 버거웠다. 06. 페미니즘과 나 그렇게 만난 페미니즘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얘기해주었다. 월경페스티벌(자원봉사를 하며, 생리대를 나누어주는 일도 했었다.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아시겠지만 현재의 생리대는 여성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습니다. 대안생리대(대안달거리대)에 대해선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쓰도록 하겠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피자매연대 http://bloodsisters.or.kr 를 참조하시길), 다름으로닮은연대의 무지개시위, 안티미스코리아페스티벌, 동성애자와의 인터뷰 등 여러 곳에서 멋진 그/녀들을 만났다. 그/녀들 곁에 있으면 주위가 여러 가지 색깔로 물들며 활기찬 소리가 난다. 꽥꽥거리는 소리, 꽉꽉거리는 소리, 팅팅거리는 소리, 뽕뽕거리는 소리... 왜냐면 우리는 페미니스트니까 ^^* 합리성, 과학, 진리 등의 이름으로 ‘일반’(그리고 남성일반)을 규정하고, 모든 구체를 추상화함으로써 그 경험들을 없애버리는 폭력에 대해, 나의 페미니즘은 그 구체적 삶의 다양함들이 야생의 꽃과 들처럼 어우러져, 그 경험이 말하게 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그 이야기들은 나를 되돌아 보게 한다. ‘진보’를 지향한답시고 내 안에 가득찼던 엘리트주의, 전체주의, 권위주의, 나이주의와 학벌주의의 찌꺼기들이 얼마나 나의 삶을 더욱 그 속에 가두었는지. 여전히 나는 반자본주의-사회주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나의 운동 또한 그런 방향성 속에서 만들어가고 싶다.(물론 그것이 이 운동이 ‘더’ 중요하다, ‘덜’ 중요하다의 문제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글 처음의 질문 -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 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것은 나의 페미니즘이 길을 잃지 않기 위함일 것이다. P.S. 한총련에 대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보안법이라는 구시대적인 악법 속에서도 이남사회의 미국에 대한 종속성(그 수위에 대해서는 견해의 차이가 있더라도)을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는 그들을 지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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