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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6/25 '꼴통페미'는 당해도 싼가? (1) (4)



안티-페미니스트 (다르게 부를 수 있는 호칭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이 얘기하는 것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여전히 페미니스트를 반대할 뿐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들에게 무언가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글 중간 중간에 괄호와 주석을 수십개씩 달아주어야 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일은 내 스스로도 너무나 피곤한 일이라 별로 글쓰기의 의욕을 샘솟질 않는다. 내키지 않는 일이라 걱정되긴 하지만 일단 시작해본다.





1. 우리는 하나의 여성주의자가 아닌, 서로 다른 목소리를 가진 여성주의자들



기득권과 자본가들이 노동운동에 딱지 - 귀족 노조 - 붙이기를 좋아하는 것만큼, (귀족노조 딱지 한방이면 모든  파업은 이미 접고들어가는 게임이다. 제길!) 좌파 지식인들 또한 여성주의자에게 딱지 붙이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의 경험의 차이로 생길수 밖에 없는 수많은 서로 다른 여성주의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이 놈의 딱지의 이름은 엘렝강스하게도 "부루주아 페미니스트"다.



이 놈의 딱지는 붙이기만 하면, "모든" 여성주의자들을 '악다구니나 쓰는 할 일 없는 유한 귀부인'의 형상으로 변신시켜버린다. 이렇게 모든 여성운동을 자신이 만들어놓은 여성주의자의 모습에 가두어둔 상태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의기양양하게 내세운다. 별로 꿀릴게 없다. 왜? 이미 여성주의자들의 모습을 하나로 정의한 상태니 자신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그 여성주의자'들을 잘근잘근 씹어주기만 하면 되니까. 이거보다 쉬운게 어딨어.

그들은 노동자 계급의 투쟁과 혁명만이 사회를 바꿀 수 있고, 계급이 해방될 때 곧 여성이 해방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 전제만을 고집하는 이들 입장에서, 성별 권력 구조에 대해 광범위하게 문제 제기하는 여성운동은 ‘계급 투쟁의 방해꾼’이자, 계급 전선으로 따진다면 필연적으로 ‘부르주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노동자 소외, 농민 소외를 논하는 논쟁과 운동방식에 여성노동자와 여성농민의 소외와 이슈가 포함되지 못하고, 사회주의 국가나 우리 사회 운동권 조직과 노조 안에서도 성폭력, 성매매가 자행된다는 사실에 대해선 모른 척 한다. 노동자건 농민이건 중산층이건 간에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받고, 가사노동과 양육, 간병 등 보살핌 노동을 전담해 왔다는 사실을 모른 척 한다. 성차별 문제에 있어 자신들이 ‘기득권’이자 ‘가해자’라는 것을 반성하지 못하는 건 물론이다.

결국, 김규항씨를 비롯해 좌파 진보지식인이 여성운동을 향해 ‘부르주아 엘리트’ 운운하는 것은 사회의 성별 권력 구조를 읽어내지 못하거나 그에 대항할 필요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여성운동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결코 ‘여성 민중’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여성운동이 ‘부르주아 엘리트’ 운동이라는 자신들의 견해를 정당화시킬 때에만 ‘여성민중’을 논한다. 김규항씨가 여성운동의 미래와 여성민중을 걱정한다는 것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 인권을 걱정한다는 것만큼이나 가증스러운 일이다.



(중략)



수많은 남성 인사들이 있지만, 그 중 한두 사람의 언행 때문에 남성 인사들 전체, 심지어 남성운동권 전체가 매도당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러나 여성 인사들 중 한두 사람의 언행으로 인해 여성계 전체, 심지어 여성운동계 전체가 매도당한다. 여성운동의 흐름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여성운동계가 어떤 타격을 입을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 언론의 무책임함 때문이다.



김규항과 한겨레의 ‘여성운동 물먹이기’/ 일다 편집장 조이여울

이러 저러한 과정을 거쳐, '씹기가 끝나면', 사회의 성별 권력 구조에 대한 대항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거나, 또는 무시했음에도 그들은 "여성운동이 잘 되려면", "진정한 양성평등을 이루려면"이라는 문구를 내세우며 여성운동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얘기해준다. 친절하기 그지 없다.





2. 사회적 약자의 말하기



여성주의자들이 성별 권력구조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을 아무리 목이 쇠도록 외쳐도 그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리고 가끔 도발적인 문제제기들에 벌떼처럼 몰려든다. 특히나 그들의 입맛에 딱 맞는 미끼를 던져준 '꼴통페미'에게는 더더욱 수많은 성적 모욕의 글들이 뒤따른다. '마초'들을 잘못 건드린건가? 마초들이 흥분하게 만들었으니, '꼴통페미'의 잘못인가? 그럴만했으니 당해도 싼가?



우리가 이건희 구속 수사를 얘기한다고 해서, "이건희"라는 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자본주의의 다양한 층위들이 결집되어 나타나는 하나의 사건이다. 우리가 실제로 공격하고자 하는 곳은 이건희 개인이 아니라, (한국의) 자본주의이다. 아닌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또 그들은 어느샌가 남/여 개인간의 투쟁의 장의 문제로 몰고간다. 왜 화살을 아무 죄없는 남성에게 돌리냐고 문제삼는다. 잠재적 범재인 취급한다고 기분 나빠한다.(당신, 그리고 나는 기분 언짢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당신과 나는 성폭력의 피해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그녀들의 경험을 이해하려고 들지 않는다) 자신들의 독해력 부족을 왜 우리에게 탓하는가?



기득권층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사회는 그들을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는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기 위해서 언제나 더 많은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들은 배척당하고 있음에도, 기득권은 사회적 약자에게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고 얘기한다. 제발 듣고나 얘기하자. 아님 독해력을 키우던가 :P



앗. 반론이 예상된다. 여성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그렇게 얘기하면 :)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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